“잃어버린 성보, 고향 품으로” 일본서 돌아온 조선 불화 2점

“잃어버린 성보, 고향 품으로” 일본서 돌아온 조선 불화 2점
1. 사건 개요
대한불교조계종이 대구 달성군 용연사에서 봉안되던 불화 두 점을 다시 품에 안았다. 1998년 9월 30일 사찰에서 사라진 뒤 자취를 감췄던 작품들이, 무려 27년의 공백을 지나 올해 일본에서 기증 형태로 돌아온 것이다.
올해 초 일본의 한 소장자가 소장 경위를 확인하던 중 해당 불화가 도난 문화재임을 인지했고, “본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길 바란다”는 뜻을 종단에 전달했다. 조계종은 전문가와 함께 현지에서 실물을 대조·검증했고, 7월 합의 체결 후 8월 6일 국내 반입을 마쳐 불교문화유산보존센터로 이운했다. 사찰과 종단, 보존기관의 삼자 협력이 물 흐르듯 이어진 결과다.
다만 수십 년간 개인 소장 환경에 놓였던 탓에 보존 상태는 최상이라 보기 어렵다. 조계종은 용연사·보존센터와 협력해 보존 처리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학술 조사도 병행할 계획이다. 긴 잠에서 깨어난 두 화면은 이제 과학적 처치와 연구를 통해 내력을 다시 써 내려가게 된다.
2. 작품의 역사·미술사적 의미
‘영산회상도’(1731)는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법을 설하는 장면을 장대한 스케일로 펼친 불화다. 용연사 대웅전 중창 이후 조성된 다섯 점의 불화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작품으로 확인된다. 이번 실물 검증 과정에서 수화승이 설잠 스님이었음이 처음 명확해졌고, 포근·세관·설심 등 당대의 화승들이 합작에 참여한 사실도 드러났다. 대형 후불도 제작을 지휘할 만한 설잠의 기량과 조직력이 입증된 셈이다.
시주자 명단에는 영조의 장남 효장세자의 빈궁 조씨가 보인다. 왕실이 사찰 불사에 보탬을 더한 흔적으로, 작품의 사회사적 배경과 왕실·사찰 네트워크를 엿보게 한다. 즉, 이 불화는 도상 자체의 장엄함을 넘어 당대 권역의 후원 구조를 증언하는 일차 사료다.
‘삼장보살도’(1744)는 수탄 스님이 그린 화면으로, 의균 화파의 전통을 잇되 화면 구성과 세부 묘사에서 새로운 시도를 보여 완성도를 끌어올린 사례로 평가된다. 천장·지지·지장보살을 중심 축으로 세워 권속을 풍부히 배치하는 방식은 수화승으로서 수탄의 장기를 드러낸다. 색면의 밀도와 필선의 단호함이 공존해, 문수풍의 엄격함과 관음풍의 유연함이 한 화면에서 호흡한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두 작품의 귀환은 단순한 반환 소식을 넘어, 지역 사찰 불화사의 중추를 복원하는 일이다. 만약 조각난 퍼즐의 모서리 한 조각이라면, 이번 환수는 그림 전체를 가늠하게 하는 윤곽선을 되찾은 일에 가깝다. 연구자에겐 제작 체계·후원자·화원 네트워크를 종합적으로 검토할 단초가, 대중에겐 도난·유통·환수라는 문화재의 생애사를 성찰할 계기가 된다.
향후 종단은 보존 과학을 통해 안료·비단·배접 상태를 점검하고, 공개 전까지 안정화 처리를 우선한다. 전시로 이어질 경우, 1998년 도난 전 봉안 사진·당대 화승의 계보·시주 기록을 함께 제시해 맥락 전시를 구현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국외에 머문 시간은 길었지만, 이제 두 화면은 다시 “관람객 앞에서 법을 설할” 준비를 시작했다.
에디터 노트
문화재 환수는 법적 공방이나 거래가 아닌, 선의의 기증으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이번 사례는 개인 소장자의 윤리적 선택이 공동체의 문화 기억을 되돌린 보기 드문 선례다.
핵심 포인트 요약
• 1998년 9월 30일 도난된 용연사 불화 2점이 2025년 8월 6일 국내 반입
• ‘영산회상도’(1731): 설잠 수화승 참여 최초 확인, 왕실 후원 흔적(효장세자 빈 궁 조씨)
• ‘삼장보살도’(1744): 수탄 제작, 의균 화파 전통 위 신선한 구성·세부
• 일본 소장자의 자발적 기증으로 환수, 향후 보존 처리 및 학술 연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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