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좀 더 늙어줘” — 베니스가 선택한 박찬욱의 잔혹한 위로

“이병헌, 좀 더 늙어줘” — 베니스가 선택한 박찬욱의 잔혹한 위로
1. 베니스로 간 유일한 한국 경쟁작
제82회 베니스 국제영화제가 올해도 칸·베를린과 어깨를 겨루는 무대가 됐다. 그 한복판에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한국 작품 단 하나의 경쟁 초청작으로 이름을 올렸다. 박 감독이 이 섹션에 다시 불린 건 ‘친절한 금자씨’(2005) 이후 무려 20년 만. 한국 영화가 이 무대의 본선에 선 것도 ‘피에타’(2012) 이후 13년이 흘렀다. 시간을 건너 온 귀환이자, 한국 영화계에 던져진 드문 호재다.
감독은 초청 소감 대신 각오를 내놨다. 오랫동안 비워 둔 자리를 다시 채우는 만큼 “기쁘면서도 어깨가 무겁다”는 담백한 표현. 형식적인 수사보다 결과로 말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축제는 9월 6일 폐막과 함께 시상식을 치른다. 레드카펫보다 긴장은 심사위원 테이블 위에서 만들어진다.
2. 종이에 인생을 건 사람들
작품의 주인공은 만수(이병헌). 일터에서 밀려난 뒤 가족을 지키려는 가장의 사투를 그린다. 소재는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THE AX’에서 가져왔지만, 박찬욱식 해부도는 직장이라는 서늘한 시스템과 개인의 존엄 사이의 틈을 들여다본다. 배우진은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까지 촘촘하다. 이름값이 아니라 역할의 밀도를 우선한 매칭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건 인물들이 종이를 다루는 장인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대중에게 종이는 흔한 소모품일지 몰라도, 영화 속 그들에게는 촉감·색·광택까지 평가 대상인 작업의 미학이다. “종이를 만든다”는 일이 그저 공정이 아니라 삶의 품격을 증명하는 일이라는 시선. 박 감독은 이를 통해 “직장에서 맡은 한 역할로만 환원되는 인간의 비극”을 전면화한다. 스크린을 떠나 촬영 현장의 자신에게도 겹쳐 보였다는 고백이 뒤따른다.
캐스팅의 비화도 화제다. 박찬욱은 오래전부터 이병헌을 상정해 대본을 다듬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빨리 좀 늙어라”라는 농담을 자주 건넸다는 일화를 꺼냈다. 탄력 있는 피부와 반듯한 이미지는 그가 즐겨 파는 비정한 세계와 잘 맞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지금의 이병헌은 중년의 결을 제대로 얻었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로 시작된 인연이 시차를 건너 다시 접속된 셈이다.
결국 ‘어쩔수가없다’는 구조조정의 풍경을 배경으로, 생존과 자존의 경계에서 미끄러지는 인물을 응시한다. 그 투박한 비애를 박찬욱은 장르적 긴장 위에 얹는다. 두 시간짜리 오락거리로 치부하기엔, 누군가의 삶 전체가 갈려 들어간다는 사실—그게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불편한 위로다. 그리고 베니스는 왜 이 불편함을 경쟁 무대로 불렀는지, 곧 결과로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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