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그리넷

생활/문화

“이병헌, 좀 더 늙어줘” — 베니스가 선택한 박찬욱의 잔혹한 위로

M
관리자
2025.08.31 추천 0 조회수 1074 댓글 0

“이병헌, 좀 더 늙어줘” — 베니스가 선택한 박찬욱의 잔혹한 위로

“이병헌, 좀 더 늙어줘” — 베니스가 선택한 박찬욱의 잔혹한 위로

 

 

1. 베니스로 간 유일한 한국 경쟁작

 

제82회 베니스 국제영화제가 올해도 칸·베를린과 어깨를 겨루는 무대가 됐다. 그 한복판에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한국 작품 단 하나의 경쟁 초청작으로 이름을 올렸다. 박 감독이 이 섹션에 다시 불린 건 ‘친절한 금자씨’(2005) 이후 무려 20년 만. 한국 영화가 이 무대의 본선에 선 것도 ‘피에타’(2012) 이후 13년이 흘렀다. 시간을 건너 온 귀환이자, 한국 영화계에 던져진 드문 호재다.

 

감독은 초청 소감 대신 각오를 내놨다. 오랫동안 비워 둔 자리를 다시 채우는 만큼 “기쁘면서도 어깨가 무겁다”는 담백한 표현. 형식적인 수사보다 결과로 말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축제는 9월 6일 폐막과 함께 시상식을 치른다. 레드카펫보다 긴장은 심사위원 테이블 위에서 만들어진다.

 

2. 종이에 인생을 건 사람들

 

작품의 주인공은 만수(이병헌). 일터에서 밀려난 뒤 가족을 지키려는 가장의 사투를 그린다. 소재는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THE AX’에서 가져왔지만, 박찬욱식 해부도는 직장이라는 서늘한 시스템과 개인의 존엄 사이의 틈을 들여다본다. 배우진은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까지 촘촘하다. 이름값이 아니라 역할의 밀도를 우선한 매칭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건 인물들이 종이를 다루는 장인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대중에게 종이는 흔한 소모품일지 몰라도, 영화 속 그들에게는 촉감·색·광택까지 평가 대상인 작업의 미학이다. “종이를 만든다”는 일이 그저 공정이 아니라 삶의 품격을 증명하는 일이라는 시선. 박 감독은 이를 통해 “직장에서 맡은 한 역할로만 환원되는 인간의 비극”을 전면화한다. 스크린을 떠나 촬영 현장의 자신에게도 겹쳐 보였다는 고백이 뒤따른다.

 

캐스팅의 비화도 화제다. 박찬욱은 오래전부터 이병헌을 상정해 대본을 다듬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빨리 좀 늙어라”라는 농담을 자주 건넸다는 일화를 꺼냈다. 탄력 있는 피부와 반듯한 이미지는 그가 즐겨 파는 비정한 세계와 잘 맞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지금의 이병헌은 중년의 결을 제대로 얻었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로 시작된 인연이 시차를 건너 다시 접속된 셈이다.

 

결국 ‘어쩔수가없다’는 구조조정의 풍경을 배경으로, 생존과 자존의 경계에서 미끄러지는 인물을 응시한다. 그 투박한 비애를 박찬욱은 장르적 긴장 위에 얹는다. 두 시간짜리 오락거리로 치부하기엔, 누군가의 삶 전체가 갈려 들어간다는 사실—그게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불편한 위로다. 그리고 베니스는 왜 이 불편함을 경쟁 무대로 불렀는지, 곧 결과로 말할 것이다.

 

 

댓글 0

뉴스

전체 정치 경제 사회 생활/문화 IT/과학 세계이슈 연예 건강
생활/문화

“10년을 달려온 N, 이제 연 10만대” 현대차 고성능 브랜드의 다음 질주

M
관리자
조회수 790
추천 0
2025.09.20
“10년을 달려온 N, 이제 연 10만대” 현대차 고성능 브랜드의 다음 질주
생활/문화

“가을 문턱에서 요란한 비” 9월 19일 전국 날씨 전망

M
관리자
조회수 786
추천 0
2025.09.19
“가을 문턱에서 요란한 비” 9월 19일 전국 날씨 전망
생활/문화

“한밤까지 퍼붓는다” — 곳곳 호우특보, 최대 100mm 추가

M
관리자
조회수 937
추천 0
2025.09.17
“한밤까지 퍼붓는다” — 곳곳 호우특보, 최대 100mm 추가
생활/문화

“여름 퇴장 선언?” 내일·모레 전국 비…주 후반 성큼 가을

M
관리자
조회수 918
추천 0
2025.09.16
“여름 퇴장 선언?” 내일·모레 전국 비…주 후반 성큼 가을
생활/문화

“초가을 맞나?” 낮 기온 30도권…남부는 비, 동해안은 너울

M
관리자
조회수 1040
추천 0
2025.09.15
“초가을 맞나?” 낮 기온 30도권…남부는 비, 동해안은 너울
생활/문화

“우산 필수” 토요일, 전국에 강한 비…수도권은 오후 차츰 그쳐

M
관리자
조회수 866
추천 0
2025.09.14
“우산 필수” 토요일, 전국에 강한 비…수도권은 오후 차츰 그쳐
생활/문화

“우산은 기본, 방수는 덤” 오늘 밤부터 전국에 세찬 비

M
관리자
조회수 828
추천 0
2025.09.13
“우산은 기본, 방수는 덤” 오늘 밤부터 전국에 세찬 비
생활/문화

이틀간 전국 강타할 폭우…경기남부·충남·강원내륙 150㎜ 넘는 비 예보

M
관리자
조회수 870
추천 0
2025.09.12
이틀간 전국 강타할 폭우…경기남부·충남·강원내륙 150㎜ 넘는 비 예보
생활/문화

“가을빛은 선명한데, 체감은 한여름” 서울 32℃…주말엔 강릉에 단비 유력

M
관리자
조회수 946
추천 0
2025.09.11
“가을빛은 선명한데, 체감은 한여름” 서울 32℃…주말엔 강릉에 단비 유력
생활/문화

남해안 번개구름 급증…“밤사이 물폭탄 주의”

M
관리자
조회수 936
추천 0
2025.09.09
남해안 번개구름 급증…“밤사이 물폭탄 주의”
생활/문화

“뉴욕을 흔든 두 개의 트로피” 로제·캣츠아이, MTV VMA에서 K-팝 새 역사

M
관리자
조회수 955
추천 0
2025.09.08
“뉴욕을 흔든 두 개의 트로피” 로제·캣츠아이, MTV VMA에서 K-팝 새 역사
생활/문화

“상은 못 받아도 관객은 얻었다” 박찬욱 신작, 베니스가 보내준 박수

M
관리자
조회수 945
추천 0
2025.09.07
“상은 못 받아도 관객은 얻었다” 박찬욱 신작, 베니스가 보내준 박수
생활/문화

가을 문턱 두드리는 폭우, 무더위는 여전히 기승

M
관리자
조회수 940
추천 0
2025.09.06
가을 문턱 두드리는 폭우, 무더위는 여전히 기승
생활/문화

자극적 성장 드라이브: 문체부 2026년 예산, 가장 큰 폭으로 뛴다

M
관리자
조회수 886
추천 0
2025.09.05
자극적 성장 드라이브: 문체부 2026년 예산, 가장 큰 폭으로 뛴다
생활/문화

첫날부터 ‘빅딜’ 쏟아진 프리즈·키아프… 서울, 진짜로 미술 수도가 됐다

M
관리자
조회수 902
추천 0
2025.09.04
첫날부터 ‘빅딜’ 쏟아진 프리즈·키아프… 서울, 진짜로 미술 수도가 됐다
1 2 3